이군남(이십년 군생활한 남자)의 개병(개미와 병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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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이군남(이십년 군생활한 남자)의 개병(개미와 병사)이야기

by NB1978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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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병(개미와 병사) 이야기

'살벌한 전투가 한창인때 병사는 너무 겁에 질려 도망갈 구색을 찾기시작했다.

이러저리 뛰다보니 허름한 집이 보였다.

병사는 고민도 없이 허겁지겁 집안에 숨어들기 시작했다.

이제야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만 같았고 전투는 다른이들의 애긴것 처럼 위안이 됐다.

병사가 잠시 쉬려 앉다 개미한마리를 보았다.

개미는 자기보다 훨씬 무거워 보이는 먹이를 옮기려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옮기다 굴러지고 옮기다 굴러지고... 가만보니 100번은 더 하는 것 같았다.

결국 개미는 먹이 옮기는 시도를 수차례 한 끝에 유유히 사라졌다.

병사는 뭔가 크게 뒷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저 개미보다 못한 건가...? 저 개미도 살아보려 애를 쓰는데....

병사는 다시금 총을 들었다. 그리고 포성이 울리는 전투현장으로 지체없이 뛰어들어갔다.'

 

어릴적 무언가 포기하고 싶어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무릎배게를 해주시곤 '병사와 개미'에 대한 애길 들려주곤 했다.

그 땐 왜 저런 말씀을 해주시지...? 더 잼난 애기 없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회상해보면 어머니 또한 개미처럼 가족을 위해 한없이 고생하셨다는 걸 깨닭는다.

지금 내 모습처럼...


 

20년 군생활 짧은 회고

40여년이 조금 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군가 너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고 질문한다면, 과연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20여년의 군 생활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얘길 해야 하나...? 아니면 어여쁜 가족을 만나 결혼에 성공하고 예쁜 두 자녀를 둔 가장이 되었다고 얘길 해야 하나...

26살에 시작한 내 군 생활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던 듯 싶다.
전방에 모 사단의 포병부대에서 근무하며 여러 차례 야외훈련과 철야 훈련, 당직근무를 지겹도록 섰다.
둘째 아이 출산 땐 아예 가보지도 못하고 거의 한 달 만에 이미 다 커버린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 애기지만 당시 당직근무를 서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께서 출산 축하한다고 전화하던 그 때가 너무 선하고 지워지질 않는다.

그땐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렇게 군에서 생활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운한 감이 적었던 게 사실이고 가족 또한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시설을 회상해보자면 현명한 행복한 군 생활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간 위관과 영관 시절에 '야근의 생활화'를 열심히 실천하고 실천했다.

결국은 무기력함에 빠진 나를 발견하고 군 생활에 마인드를 다시 잡았다. 군에 뼈를 묻겠다는 것이 아닌 방향을 전환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인지 결국 진급에 실패하였지만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군 생활을 돌아보면 너무나 많은 추억이 내 맘을 설레게 만든다. 너무도 많은 스토리가 있어 꺼내기 힘들지만 웃던일, 눈물 흘렸던 일통곡했던 일... 너무도 행복했던 일 등 다양한 애기들이 지금 짧은 순간에도 머리를 스쳐간다..

지금 아련한 기억이지만 맘 서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현재의 내 복무 상태 때문일 것이다.
다름 아닌 난 마지막 부대에서 전문직 군무원(회전익 조종사)으로 운 좋게 전향할 수 있었다.
비록 계급장을 떼었지만 아직... 15년 이상을 다시 조종복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다.
가끔은 내가 전역은 했나 의아스러울 때도 있지만... 계급장이 없는 내 군복(조종복)을 보면 현실을 직시하곤 한다.

하지만 작금의 난 너무도 행복하고 행복하다. 비록 사랑하는 가족을 가끔 볼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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